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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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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호

과거로부터 전해진 이야기

아날로그 스토리 / 전민성, ‘오이뮤’ 대표



 
개인 연락망이란 개념이 처음 생기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사서함과 삐삐를 사용했고, 부모님은 벽돌처럼 커다란 SPC 휴대전화를 사용하셨다. 나는 4화음에서 16화음으로, 흑백에서 컬러 스크린으로 급격하게 진화한 휴대전화의 변모와 아이폰의 전 세대를 경험했다. 아마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의 경험들이 혼재된 새 천년의 역사적인 연도에 유년시절을 보낸 것만으로도 나는 급진적인 발전의 시대를 겪어온 특별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졸업 후에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브랜드를 통합하는 시각적 측면에서의 디자인 업무를 맡아왔다. 정신없이 실무에 빠져 분주하게 몇 해를 지내오다가 문득 내 직업의 소명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남들과 다름없이 대학에 갔고,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해서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던 나였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옷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돈을 쓰고, 일부는 미래를 위해 저축도 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언제나 헛헛한 갈증이 있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생활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변화와 모험을 통해 이 헛헛함을 해소해줄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선 회사를 그만두고 어학원 학생비자를 받아 그간 회사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전부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10여 개월을 살았다.
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아는 이 하나 없이 살면서 내면을 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미국 서부의 포틀랜드(Portland)’라는 도시에서 느낀 로컬 문화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과 그러한 문화를 우선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매우 세련되어 보였다.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좋아 보이는 것을 금세 비슷하게 만들거나 수입하고, 또 그것이 없어지면 시장의 순환이 너무나 소모적으로 되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포틀랜드에서는 가장 핫한 것이 ‘made in Portland’이니 할 말 다하지 않았나.
 
서울로 돌아가면 디자이너로서 내가 우리 문화의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그러한 문화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해방 이후 활황을 이어갔던 성냥공장에 대한 자료를 발견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나둘 사라지다가 이제는 마지막 공장만이 남았고, 이것마저도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후,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성냥공장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미국으로 들고 갔던 돈이 모두 소진되어 서울에 돌아와 보니 여전히 서울의 모든 것은 빨랐고, 또 바빴다.
나는 경상북도 의성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성냥공장에 찾아갔고, 그렇게 오이 뮬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끈질기게 성냥공장들을 찾아다니다 결국 유엔 팔각 성냥을 생산해오던 한 공장과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성냥의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했다. 하나의 오브제로서 불을 켜는 맛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과거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성냥에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에는 성냥 프로젝트와 같은 맥락으로 전통적인 향을 재래식으로 생산하는 전통 향방과의 협업을 진행했다. 종교적·의례적으로만 쓰이던 선향을 재개발하여 향기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이 있기까지 지난 세월 속 물건들의 쓰임과 이야기를 새롭게 전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의미 있는 도전이다. 2017년 현재, 30대 초반에 들어선 내가 디자이너로서 이 세대의 역사와 문화에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게 찾고 싶었던 직업적 소명은 결국 여기에 있었다. ‘오이뮤라는 브랜드를 통해 기성세대와 10·20대의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생활문화적인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작은 역할에서 나는 비로소 직업적 소명을 찾아낸 것 같다.
 
 
인물사진: 오이뮤 공동대표인 신소현(), 전민성()